Ⅰ. 서론
일찍이 한문과 함께 전래된 유학 가운데 禮樂思想은 우리나라 사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儒敎가 國敎였으므로 禮樂思想이 생활에 보다 더 많은 영향을 끼쳤고, 음악에도 큰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개인이나 사회를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禮樂이 잘 정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禮樂思想이다. 동양의 孔子는 ‘시(時)에서 선한 마음을 일으키고, 예(禮)에서 사람이 서고, 악(樂)에서 사람이 이룩된다.’라고 말하고 있다. 즉 예(규범)과 악(예술)은 일치한다고 보는 것이다. 예술은 절대적인 ‘선’을 포함하고 있다는 견해로, 음악은 좀더 사람답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처럼 禮와 樂으로 다스리는 사회를 이상적인 사회로 생각했던 우리 조상들은 `禮`에 못지 않게 `樂`도 중시했는데, 禮樂의 뿌리는 역시 孔子가 주장한 `仁`이라 할 수 있다. 仁은 곧 사람의 본성이며 중용은 사람이 되는 길이다. 사람이 되는 길은 사람을 사랑함으로써 성정을 바르게 하는 것이니 이것이 禮樂의 근본이라고 하였다. 「禮記」중 「樂記」에는 樂의 문제를 禮와 함께 설명한 대목이 많다. ‘禮 는 天下之序也요, 樂은 天下之和也 ’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또 樂由中出 禮自外作에서 알 수 있듯이 樂은 가운데서부터 나오고, 禮는 바깥에서 지어진다고 보았다. 개인이나 사회에서 禮는 겉으로 드러나는 제도나 질서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樂은 내부의 문제, 조화의 문제, 내용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禮樂은 사회와 개인을 도야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체계로 보았다. 정치에 있어서도 반드시 예와 악을 중시했다. 한 나라가 서면 ‘功成作樂 治定制禮’라 하여 반드시 음악을 정비해야 했으며 음악을 통해서 국민을 하나로 순화시켜서 잘 다스릴 때 비로써 정치가 잘 되는 것으로 알았다. 우리나라의 다산 정약용은 그의 ‘악론(樂論)’에서 ‘인간은 자연히 선한 것이 아니라, 가르친 후에 선하게 된다. 예와 악은 잠시라도 몸을 떠나서는 안된다.’ 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예악일치론’이다. 예를 가르치고, 악을 가르쳐서 사람을 올바르게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인간의 감수성을 발달시켜 예민하게 하고 상상력이 극대화 되도록 자극한다. 인간은 예술적 체험을 통하여 사람들 사이에 일정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며, 예술을 통해 도덕성을 함양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서양물물의 무차별적인 유입과 산업화·공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급격한 의식구조의 변화로 예악사상으로 굳게 지켜 오던 우리 사회의 윤리관은 파괴되었다. 서구 문화의 맹목적 추종으로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했고, 전통 윤리는 구시대의 전유물로 추락하였다. 한 발 더 나아가서는 전통 윤리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신자유주의까지 팽배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전통 사상인 예악사상을 재조명하고 21세기의 삶에 알맞게 실천 방안을 모색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숭고함, 사랑과 자비, 은혜, 효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 세계를 재창조 해 나가야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우리 조상들의 행동 실천 덕목인 예악사상에 대하여 살펴보고, 현재의 교육에 어떻게 하면 우리의 예악사상을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졸견을 피력해 보고자 한다.
Ⅱ. 예악사상
1. 禮란 무엇인가?
禮란 크게는 한 왕조, 한 시대의 법률, 제도이며 작게는 한 가족, 한 씨족의 미풍양속에 해당한다. 이것은 누가 갑자기 만든 것이 아니고 시대가 누적되는 과정에서 얻어진 人文進化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개 禮의 기원은 신을 제사 지내는 일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점차 확장되어 인간상대로 되었고 또 인문진화의 필연적 추세로 정착되었다. 禮란 질서의 뜻이다. 정치와 사회제도, 그리고 복잡한 인간관계를 망라한다. 예는 사람이 지켜야 할 사회적 행위의 규범이다. 말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을 중시하기 때문에 조상들은 `禮로써 절제한다`고 하였다. 禮는 국가통치의 근본인데 덕은 예의 근본이다. 공자는 군자란 일거일동이 예를 지켜야 하고 또 예의 구속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예의 범위를 벗어나 멋대로 행동하면 마땅히 刑이라는 제재를 받아야 하므로 예를 벗어나면 곧 형으로 들어간다고 하였다.
2. 樂이란 무엇인가?
樂이란 音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音이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감정이 마음 속에서 움직이는 까닭에 소리가 나타나게 되었고, 소리가 曲調를 이루게 되면 이것이 音이다. 治世의 音은 편안하고 즐거우나, 亂世의 音은 불안하고 분노에 차있는데 이것은 정치가 도리에 어긋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樂의 근본은 사람의 마음이 사물에 감동하는데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슬픔, 즐거움, 기쁨, 분노, 공경, 사랑은 성품이 아니라 사물로부터 느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樂은 音에 의하여 생기지만 그 근본은 사물로부터 느껴지는 감동이다. 이것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고 情이라 할 수 있다. 사물에 의하여 변하는 인간의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樂이라 할 수 있어, 樂은 참으로 중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3. 禮樂의 상호관계
한 나라가 탄생하게 되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서 제도를 정비하고 위계질서를 잘 지킬 수 있도록 국가경영의 기본 틀을 마련하여야 한다. 이것은 바로 禮에 속하는 것이고, 이 禮를 위하여 樂이 필요한 것이다. 聲音의 길은 정치와 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기균의‘공자 학설의 현대적 의의’에 보면 “禮를 거론하면서 역시 樂에 이른다”고 했다. 樂은 和를 주로 하고 禮는 敬을 주로 한다. 악은 情을 바꿀 수 없고, 예는 理를 변화할 수 없으니 정에 합하여진 뒤에야 이에 도달할 것으로 완전한 인격과 이상적 사회는 반드시 예악의 가르침이 겸비되어야만 한다고 하였다.「禮記」의 「樂記」에도 ‘예와 악은 잠깐이라도 몸에서 떠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고 또 ‘임금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림에 있어서 예보다 좋은 게 없고, 풍속을 옮겨 바꿈에 있어서는 악보다 좋은 게 없다’ 또 ‘禮節은 백성의 마음이요, 樂和는 백성의 소리이다. 그러므로 예악으로써 정치를 행하고 형벌로써 백성의 나쁜 짓을 방지시킨다. 禮, 樂, 刑, 政의 네 가지에 통달하면 거슬림이 없게 된다. 이것이 곧 왕도가 갖추어짐이다.’라고 하여 制禮作樂은 중국문화의 중심사상이었다. 서론에서도 밝혔듯이 禮樂의 뿌리는 孔子가 주장한 `仁`이라 할 수 있다. 論語 제3편에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禮와 樂을 따져서 무엇 하느냐(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라는 언급이 있으며, 「禮記」중 「樂記」에는 악의 문제를 예와 함께 설명한 대목이 많다. ‘禮 는 天下之序也요, 樂은 天下之和也 ’라는 언급이 그것이다. 또 樂由中出 禮自外作에서 알 수 있듯이 樂은 가운데서부터 나오고, 禮는 바깥에서 지어진다고 보았다. 개인이나 사회에서 禮는 겉으로 드러나는 제도나 질서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 樂은 내부의 문제, 조화의 문제, 내용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禮樂은 사회와 개인을 도야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체계로 보았다. 樂은 사람의 안, 즉 마음으로부터 나오고, 禮는 사람의 바깥 즉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개인이나 사회에서 禮는 겉으로 드러나는 제도나 질서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樂은 내부의 문제, 조화의 문제, 내용의 문제와 연관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禮樂은 사회와 개인을 도야하는데 있어서 절대적인 체계로 보았다. 「禮記」 18권 「樂記」에 나타난 禮樂의 정의를 보자. ‘무릇 음악이 일어남은 사람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생기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외물에 접촉하여 마음으로 하여금 그렇게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다. 마음이 외물에 감촉하여 움직이는 까닭에 소리가 되어 나타난다. 소리는 원래 淸濁緩急高下의 구별이 있는데 이런 소리가 상응하기 때문에 이에 변화가 생긴다. 즉 변화하여 곡조가 되는데 이를 音이라고 한다. 音을 비교하고 조화하여 이를 악기에 시행하고, 또 干戚이나 牛毛를 잡고 곡조에 맞추어 춤추는 것, 이것을 樂이라 한다.’라고 하였고, 또 ‘무릇 樂音이 처음 일어나는 것은 모두 사람 마음이 外物에 느낌으로부터 생기니, 사람 마음이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느껴 마침내 通하여 情이 마음에서 動한다. 그러므로 말에 나타나 소리가 되고, 소리가 담고 있는 意味가 서로 應하여 자연히 청탁고하(淸濁高下)의 변화가 생긴다. 변화해서 詩를 노래하는 방법이 이루어진 것을 音이라 하는데, 성방(成方)은 曲調를 이루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라고 하였다. 또‘樂은 音이 행해져 나오는 것이니, 그 근본은 사람 마음이 外物의 느낌에 있다. 그러므로 그 슬픈 마음이 느낀 사람은 그 소리가 애절하고도 끊어질 듯하며, 그 즐거운 마음이 느낀 사람은 그 소리가 너그럽고도 한가하며, 그 기쁜 마음이 느낀 사람은 그 소리가 높이 올라가고도 흩어지며, 그 분노하는 마음이 느낀 사람은 그 소리가 거칠고도 사나우며, 그 공경하는 마음이 느낀 사람은 그 소리가 곧고도 모나며, 그 사랑하는 마음을 느낀 사람은 그 소리가 和하고도 부드럽다. 여섯 가지는 性이 아니라, 外物에 느낀 뒤에 動한 것이다.’라고 하였고 ‘섞이고 이어 엮어져 나오는 것이 音이요, 외마디로 나오는 것이 聲이니,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情이 언어의 소리에 나타나는 것이다. 그 때에 비록 슬퍼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말하고는 있으나 아직 궁상(宮商)의 조율(調律)이 없고 오직 소리일 뿐이다. 詩를 짓는 때에 이르러서는 차서(次序)와 청탁(淸濁)이 맞고 장단과 높낮이가 맞아 <궁상각치우(宮商角徵羽)의> 五聲이 어우러져 가락이 되게 하여 흡사 五色이 문양을 이룬 것 같으니, 곧 이것이 音이다. 이 音이 管絃의 악기에 올려져 연주되는 것이 이에 이름하여 樂인 것이다.’라고도 하였다. 또 이런 구절도 나온다. ‘무릇 音은 사람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다. 情이 마음에서 動하므로 소리에 나타나는데, 소리가 가락을 이루는 것을 音이라 한다. 그러므로 治世의 音은 편안하고도 즐거우니, 그 政事가 和하기 때문이요, 亂世의 音은 원망하고도 성내니 그 政事가 어그러져 있기 때문이요, 망국의 音은 슬퍼하고도 근심하니, 그 백성이 고달프기 때문이니, 이것이 바로 聲音의 道가 政事와 통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고 ‘禮로써 그 뜻이 행하려는 바를 인도하여 반드시 절도에 맞게 하고, 樂으로써 그 소리내어 말하려는 바를 和하게 하여 어그러짐이 없게 하고, 政事를 행하여 무능한 사람을 가르쳐 그 행실을 일정하게 하고, 刑法을 시행하여 統率되지 않는 사람을 벌하여 그 간사함을 막았으니, 예·악·형·정(禮·樂·刑·政)의 네 가지 일이 비록 다르나 그 극진한데 이름은 한결같이 그 느끼게 하는 것을 삼가는 것에 귀결하니, 이는 민심을 고르게 하여 다스리는 道를 내는 방법이다.’라고 하였다. 정치에 있어서도 반드시 예와 악을 중시했다. 한 나라가 서면 ‘功成作樂 治定制禮’라 하여 반드시 음악을 정비해야 했으며 음악을 통해서 국민을 하나로 순화시켜서 잘 다스릴 때 비로써 정치가 잘 되는 것으로 알았다. 결국 위의 내용을 종합하여 보면 “사람이 어질지 않으면 禮와 樂을 따져서 무엇 하느냐(人而不仁 如禮何 人而不仁 如樂何)”라고 孔子가 말한 仁의 정신이 예악사상의 뿌리가 되고, 禮로서 올바른 행동의 목표로 인도하여 절도에 맞게 하되 樂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和하게 하여 어그러짐이 없이 정사(政事)를 행하도록 하였다. 우리의 정신적인 바탕이 되었던 유교의 정치이념과 사회윤리는 禮樂의 정리로 더욱 세련되었다고 한다. 유교사상에서 禮·樂의 정비는 곧 모든 질서의 안정을 뜻하는데, 예라는 것은 도덕인의(道德仁義)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禮制가 행하여지면 이와 더불어 樂이 흥한다는 것이 유가의 기본 인식이었다. 우리 민족이 유학을 받아들인 것은 삼국시대부터이고 고려 때에는 유교경전을 통해 과거제도를 실시했기 때문에 그 이후 지식인들의 가치체계나 통치이념은 유교식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려는 불교가 국교였지만 관료들의 지식체계나 정치철학은 유교적이었다. 관료출신의 지식인들, 특히 척불숭유의 기치를 내건 조선조의 신흥사대부 출신 관료들이 조선 건국에서 유교사회 건설을 위하여 맹활약하였다. 이 시대의 왕도정치는 힘으로 다스리는 정치가 아니라 덕으로 다스리는 정치이고, 형벌로 다스리는 정치가 아니라 禮樂으로 이끌어 가는 정치이다. 禮와 樂은 한 뿌리에서 돋아난 두 개의 가지처럼 항상 함께 논의되었는데 樂記에서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樂이라는 것은 天地의 和와 관계되는 것이고, 禮라는 것은 天地의 序와 관계되는 것이다. 和氣가 있기 때문에 百物이 다 감화되고 질서가 있기 때문에 만물이 구별되는 것이다”라고 하여 禮樂의 기능과 효과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 고전에 ‘音을 잘 들어보면 樂을 알 수 있고 樂을 잘 들어보면 정치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또 ‘合樂으로 지신을 섬기고 합악으로 那國을 화목하게 한다.’는 대목도 있다. ‘正聲은 사람을 감동시키되 順氣로반응하게 하고 姦聲은 逆氣로로 감응하게 한다.’는 대목도 있다. 음악을 통해서 정치를 알 수 있다든지 음악의 효능이 신기를 섬기고 방국을 화목하게 한다든지 또 정성은 사람에게 이로운 것이지만 간성은 사람에게 나쁜 것이라는 것 등은 다 중국고전에 나오는 사상으로 오랫동안 동양음악의 준거사상으로 여겨온 것들이다. 나라에서 음악을 제정하거나 음악정책을 펼 때 雅正한 음악을 드높이고 淫聲을 억제하였다. 무릇 音은 사람 마음에서 생기는 것이요, 樂은 倫理를 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소리는 알면서 音을 알지 못하는 것은 금수(禽獸)가 바로 이것이요, 音은 알면서 樂을 알지 못하는 것은 衆庶들이 바로 이것이니, 오직 君子만이 樂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소리를 살펴 音을 알고, 音을 살펴 樂을 알고, 樂을 살펴 政事를 알아, 다스리는 道가 갖추어 진다. 이 때문에 소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音을 말할 수 없고, 音을 알지 못하는 사람과는 함께 樂을 말할 수 없으니, 樂을 알면 禮에 가까워질 수 있다. 禮와 樂을 모두 얻는 것을 德이 있다고 하는 것이니, 德은 얻는다는 뜻이라고 하였고, 倫理의 가운데 禮가 있는 것이니, 樂을 알면 禮에 통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조상들은 예악사상의 구현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음악의 정비에 노력하였다. 세종대에 많은 음악을 정리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 근거했다고 볼 수 있다. 세종 때에 특히 눈에 띄게 음악적 발달이 이루어 졌음을 알 수 있는데, 그 근본 정신이 되었던 것이 바로 예악사상이었다고 한다. 예악사상은 유교사상과 같은 것으로, 이 사상이 음악에 많은 영향을 끼쳐서 불교음악인 「靈山會上」을 器樂化 하면서 유교음악으로 만들어 갔다. 禮樂思想은 유교의 덕목이 그대로 음악사상으로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세종실록’ 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나와 있는데, “樂이란 것은 聖人이 性情을 길러 神人을 和하는 所以이며, 천지를 順하고 음양을 調하는 道이다.” “임금은 나라를 평정한 뒤에는 음악을 제정하고, 백성을 편히 살게 한 뒤에는 예를 마련한다. 그러므로, 나라를 평안케 하는 공적이 커지면 악을 갖추게 되고, 군왕의 다스림이 백성들을 골고루 편하게 하면 예를 갖추게 된다.” 위와 같은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세종대왕은 이런 예악사상의 근본을 가지고 정치를 했던 왕이었다. 이러한 문맥상으로 ‘중국의 예악을 참작하여 어떻게 조선의 것으로 소화하느냐’ 하는 것이 연구과제로 떠오르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악기를 정리하고 그 음을 정확하게 조절하는 작업이 기술적인 문제와 결부되기 시작했고 연이어 집현전과 많은 인재들을 동원하여 악의 원리를 심화시켜 갔으며 이때 활약했던 사람들이 박연, 맹사성 등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유교의 나라 조선은 음악을 중시했다. 바른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교화해서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여겼고, 음악이 어지러우면 임금의 통치가 그릇된 데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예와 악을 앞세우고 형과 벌을 뒤로하여 다스리는 이른바 '예악사상'에 따라 음악을 관장하는 국립기관을 여럿 두어 연주자를 길러내고 음악 책을 펴내며 악기를 만들고 제사나 잔치, 조회 등 왕실과 나라의 여러 행사에 음악을 시행했던 것이다. 또 ‘악학궤범’의 서문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있고, 이것을 통하여 악의 중요성을 나타냈음을 다시 한번 더 알 수 있다. “음악은 하늘에서 나와서 사람에게 머무르고 허무에서 발생하여 천생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그 혈맥을 뛰게 하여 정신을 유통케 하는 것이다.”
4. 예악사상의 현대적 접근
인간과 사회에서 음악의 역할에 대하여 예악사상이 미친 영향이 컸다. 한국의 음악 정책에는 유교적 예악사상이 큰 영향을 미쳐서 우리의 전통음악을 높은 수준으로 발달시켰고, 그 결과 궁중음악을 중시하게 되고 음악을 통해서 백성을 교화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인간은 동물과 다름없는 본능적, 충동적 존재이기 때문에 예술과 윤리는 무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즉, 인간의 본성은 쾌락을 따르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것에 쉽게 반응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화나 예술은 자연적으로 사람들의 말초신경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게 되며, 그로 인해 문화가 타락하고 예술이 저속해 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음악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좋은 음악을 통해서 사람들의 정서를 함양시키고 마음을 고양시키면 禮가 바로 서게 되고, 禮가 바로 서게 되면 나라가 융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이 쾌락적이고 감성적으로 타락되어 졌을 때 그러한 상황들로 인해서 사회나 그 시대 정신도 따라서 타락해 진다. 옛날 고대의 쾌락주의자들은 최고의 善을 쾌락이라 생각하고 마음껏 즐겼지만. 결국은 좋은 사상을 이끌어 내지 못했고, 그들의 사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졌고, 지금에 와서는 궤변주의자로까지 평가받는 지경에 이르렀을 뿐이다. 이와 같이 예술은 인간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런 논의의 연장선에서 지금의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비춰본다면 지금의 대중문화가 아이들의 정신을 얼마나 크게 훼손시키고 있는 지 쉽게 알 수 있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영화나 음악, 무용 등은 두말 할 것도 없고, 거의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는 인터넷 싸이트의 음란물이 홍수처럼 넘쳐흘러 우리 청소년들에게 덮쳐 온다. 예악사상으로 비춰보면 그것은 우리 아이들의 정신을 훼손시키는 ‘婬樂’이요, 亂世의 樂이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의 현실로 돌아와 예악사상의 구현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소견을 제시해 보고자한다. 첫째, 예악사상의 현대적 접근이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우리 선조들은 국가 통치의 수단으로 樂을 장려하고 정비했다. 樂으로써 사람의 마음을 和하게 하여 어그러짐이 없이 정사(政事)를 행하도록 하여 禮에 이르도록 하였다. 우리나라의 현대사에서도 그러한 예는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음악교과는 음악을 통하여 인간을 교화하는 덕목적 도덕교육의 수단이었다. 가곡이 가지는 음악예술의 심미성을 체득하기보다 가사, 그 자체를 덕성의 함양, 정서도야라고 하는 도덕교육의 목표로 보고 지도하였다. 심하게 말하면 정부의 시책을 구현하는 수단으로 음악교과가 존재했었다고 해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음악은 음악만이 가지는 예술적인 본질이 있다. 음악미의 향수를 통하여 조화로운 인간을 육성하는 음악교육의 목표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예악사상을 이 음악의 본질에 접근 할 수 있도록 재조명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한다. 둘째, 국악교육을 제대로 해야 하겠다. 6, 7차 교육과정에서 국악교육을 강화한다고 교과서에 국악관련 제재곡을 많이 수록하기는 했지만, 교과서에 국악관련 제재곡만 늘린다고 국악교육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 제재를 다루더라도 제대로 해야 한다. 장구치는 법이나 배우고 민요를 한 두곡 정도 부른다고 해서 국악교육이 제대로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악곡 속에 담겨져 있는 우리 민족의 정서를 알고 그 분위기에 젖어들어야 한다. 빳빳한 갓을 쓰고 한 여름에도 정갈한 한복을 차려입고 거문고를 탔던 그 선비들의 정신,자기 마음을 가다듬고 좌정한 옷매무새와 정결한 마음을 가다듬어 음악에 심취하고자 하였던 그 정서를 국악교재를 통하여 가르쳐야 한다.
Ⅲ. 결론
우리 조상들은 예악사상의 구현을 최고의 가치로 알고 있었으며, 이를 위하여 음악의 정비에 노력하였던 사실은 여러 문헌을 통하여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아무런 거름 장치 없이 밀물처럼 쏟아져 들어온 서구 문화에 대한 맹목적 추종으로 우리나라는 민족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되었고, 예악사상은 한낱 구시대의 전유물로 추락하였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전통 사상인 예악사상을 재조명하고 21세기의 삶에 알맞게 실천 방안을 모색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숭고함, 사랑과 자비, 은혜, 효 등의 가치를 중시하는 우리 문화 세계를 재창조 해 나가야할 필요성이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음악교육의 본질적 이념의 하나로 아름다운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고 따뜻하게 하며, 새로운 풍부한 세계를 향하여 이끌어 가는 선동적인 힘이 있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사회와 같은 인간상실의 시기에 사는 사람들은 시달린 마음을 위로하고 내일의 생활을 활동으로써 훌륭한 음악을 갈구하게 된다. 따라서 본 논자는 우리 조상들의 개인과 사회를 조화시키려는 예악사상을 반영한 음악교육을 통하여 상실된 인간성을 되찾아 밝고 건전한 사회구현에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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