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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한나 칼럼]정치 지도자의 '귀', 음악 지휘자의 '귀'

안국환 2009. 5. 26. 17:38

▲ 첼리스트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여러 나라에서는 숱한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 대사를 책임질 자리에서 취임식도 갖고, 고별식도 가질 것이다. 나는 지난 수년간 지휘 공부를 하면서도 "과연 지휘자는 어떤 음악적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해왔다. 이번 미국 오바마의 선거 운동과 취임 후의 행동을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도 우리 시대가 원하는 리더는 어떤 사람인지, 지휘자의 역할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우선 지휘자는 오케스트라 앞에 서기 전에 뚜렷한 음악적 비전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크게는 작곡가는 왜 이렇게 곡을 썼을까, 이 곡에 담긴 메시지는 무엇이며 어떤 연주와 해석으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이 곡을 왜 오늘날 청중이 들어야 하는가, 작곡가 앞에 섰을 때 내 연주가 부끄럽지 않을까 등등이다.

또 지휘자는 얼마나 크게, 작게, 빠르게, 느리게 같은 '얼마나'라는 세부적인 결정을 수없이 내려야 한다. 하지만 얼핏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이런 결정 때문에 황홀한 연주와 지루한 연주로 갈라진다. 얼마나 작게 연주하느냐에 따라 화산 폭발과도 같은 거대한 클라이맥스가 가능할 수도,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고, 얼마나 크게 하느냐에 따라 그 긴장감을 유지할 수도, 유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한다.

오케스트라 앞에 섰을 때, 지휘자는 모든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 한명 한명의 악기에서 나오는 소리와 그 소리에 담긴 연주자의 마음까지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들어야만 한다. 무시해서도 안 되지만, 못 들어서도 안 된다. 가장 가까이 있는 현악기도, 또 멀리 떨어져 있는 타악기의 소리도 일일이 듣고 그 소리들의 조화를 연습만이 아니라 연주 중에도 끊임없이 들으며 조절해야 한다. 아무리 지휘자가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고 원하는 소리를 확실히 알고 있더라도, 주변에서 실제 나고 있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소용없다고 한다. 지휘자의 첫 번째 역할은 가르치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다. 그 뒤에 한 걸음 더 나아가 지금 나고 있는 소리가 어떤 소리로 변화해야 하는지 그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지휘자의 기본 역할이다.

연주자들은 함께 연주하는 다른 동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연주할 때 자신도 모르게 더 서로에게 잘 어울리는 소리를 내며, 감정적으로도 적극적인 연주를 하게 된다. 아이디어는 지휘자가 심어줄 수 있지만 소리를 내는 사람은 단원이기 때문에 지휘자는 단원들이 각자의 재능과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자유롭게 자신의 음악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파트너십을 만들어야 한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서 곧바로 좋은 연주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저마다 개성이 넘치고 성격도 천차만별인 지휘자들이 전설적인 음악가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단원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원래 지휘자란 연주자들만으로는 연주하기 어려운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같은 음악이 작곡되면서 그들이 좀더 쉽게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생긴 일종의 도우미다. 섬기며 이끌고, 돕고 비전을 심어주는 지휘자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결국 지휘자는 재능과 노력, 카리스마와 인간성을 모두 갖추고 있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고 연주자들과 그 사랑을 나눠야 한다.

세계가 경제 한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마음도 더불어 춥고 위축된다. 미국의 새 대통령도, 한국의 정치인들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랑으로 연주하는 지휘자 같은 리더가 되기를 마음속으로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