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다멜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
임승수님(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저자)
12월 15일 저녁 성남아트센터에서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이 이끄는 시몬 볼리바르 유스(Youth)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았다. 베네수엘라에서 온 이 음악인들은 오케스트라 단원 모두가 26세 이하의 젊은이들로 이뤄져 있는데, 오케스트라 단원뿐만 아니라 이미 세계적 거장의 입지를 굳히고 있는 두다멜 모두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El Sistema)라고 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길러졌다.
1975년 베네수엘라의 정치인 아브레우 박사가 설립, 처음에는 11명의 청소년만 데리고 카라카스(베네수엘라의 수도)의 한 차고에서 연습을 시작했지만, 지난 30여 년 동안 40만 명 이상의 청소년들이 거쳐 갈 만큼 베네수엘라의 중추적 음악교육기관으로 성장했다. 놀라운 것은 이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있는 청소년의 90%가 빈민층이나 소회계층, 장애 아동이라는 사실이다.
음악을 공부하는데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서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교육 프로그램은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이다. 그런데 교육 프로그램만 감동적인 것이 아니었다. 이들이 일사분란하게 뿜어내는 놀라운 사운드는 그런 휴먼스토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오직 음악 자체에서 나오는 감동으로 가득 채워버렸다.
관현악법의 대가였던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를 첫 곡으로 선택하는 자신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역량은 유스(Youth) 오케스트라라는 명칭이 초라해질 정도였다. 금관악기를 포함해서 모든 악기별로 높은 수준의 연주력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두다멜의 손끝을 통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이루어지는 앙상블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국내 초연이지 싶은 베네수엘라 작곡가 카스테야노스의 <Pacairigua의 성스러운 십자가>는 라틴 특유의 리듬과 오케스트라의 다채로운 음색을 잘 살린 뛰어난 곡이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13시간 시차의 지구 반대편 베네수엘라 작곡가의 명곡을 들어보겠는가.
물 흐르듯 유려한 두다멜의 지휘는 아름다운 선율로 가득한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다. 악기들 간의 밸런스를 섬세하게 조정하면서 동시에 곡 전체의 완급을 조절해내는 이 20대 젊은이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는 ‘천재’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였다.
이날 공연의 앙코르 곡들은 어쩌면 진정한 메인디쉬(Main Dish)이지 않았을까? 잠시 조명이 어두워진 사이 베네수엘라 국기를 상징하는 점퍼를 걸쳐 입은 두다멜과 단원들은, 번스타인의 <맘보>와 히나스트라의 <말란보>를 연주하면서 악기를 공중으로 던지고, 의자 위에서 춤을 추며 벌떡 일어나 ‘맘보’를 외치기도 하는 등 유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다. 청중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어느덧 연주에 참가(?)하고 있었다.
“예술가란 진정한 의미의 창조자여야 한다. 그 위대한 소통능력 때문에 예술가는 게릴라만큼이나 위험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1970년대 칠레의 아옌데 정부와 운명을 함께 했던 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의 말이다.
베네수엘라가 21세기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한 것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 한 사람 때문이 아닐 것이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혁명을 위해 매진하고 노력했고, 엘 시스테마는 음악이라는 분야에서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의 성과일 것이다. 이런 사회 각 분야의 축적된 역량들이 차베스라는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쳤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15일 밤은 이래저래 베네수엘라 사람들이 부러운 밤이었다.
'스크렙 - 음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장한나 칼럼]정치 지도자의 '귀', 음악 지휘자의 '귀' (0) | 2009.05.26 |
---|---|
'반(反)유대주의'의 희생양 멘델스존 (0) | 2009.05.26 |
[스크랩]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와 `엘 시스테마` (0) | 2009.01.10 |
[스크랩] 음악은 힘이 세다.(펌) (0) | 2009.01.10 |
[스크랩] Re: 잘부르거나 자신있는 노래를 18번곡이라고 하는 이유는? (0) | 2008.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