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ㅡㅡ인터뷰/이인우 기획위원 iwlee21@hani.co.krㅡㅡㅡ
대전의 젊은 국악인 한기복(43)은 소문난 장구꾼이다. 장구 소리만 기가 막힌 게 아니다. 최초로 장구에 관한 석사논문을 썼다.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를 재현해 “천년의 소리를 찾겠다”며 매년 연주회를 여는 고집도 있다. 국악에 대한 애정은 넘치다 못해 ‘투쟁적’이다. 우리 음악의 ‘깊은 철학’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해, 특히 정치(어쨌든 음악교육 정책도 거기서 나오니까)에 대해 “개뿔도 모르는 넘(놈)들”이라며 울분을 감추지 않는다.
- 장구 소리가 참 좋습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사물의 김덕수, 반주 장단의 김청만 선생님 같은 분의 공연은 볼 때마다 전율을 느낍니다.”
- 그런 전율은 어떤 느낌일까 궁금합니다.
“특히 김청만 선생님은 많이 치지도 않고 한 박씩 툭하고 던지듯 치는데 그 안의 꽉 참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신음 같은 탄성이 흐르고 고개가 절로 숙여지지요. 저도 30년 가까이 장구를 치고 있지만, 차원이 다르면 한 박을 쳐도 다르죠.”
그는 남사당패 상쇠로 대전웃다리농악 기능보유자였던 송순갑(1912~2001)의 마지막 애제자였다. 군악대를 제대한 뒤 대전에 정착해 송순갑의 지도 아래 하루 16시간씩 장구를 쳤다. 1시간 자고 23시간을 친 날도 있었다. 장구를 치다 지쳐 문득 눈을 들어 보면 앉은 자리를 빙 둘러 땀이 강을 이룬 적도 있었다.
- 그게 장구를 잘 치는 비결이었습니까?
“선생님한테 저도 배운 소립니다. 잘 치려고, 잘 보이려고 하지 마라. 미련곰탱이처럼 단순해져라. 반복하고 또 반복 연습하라. 인이 박이도록. 소리의 질감을 느껴라. 소리를 만져봐라. 귀로만 듣지 말고 눈으로도 봐라. 그런 길 위에 눈이 쌓이듯 내공이 쌓여간다. 이렇게 쳐도, 저렇게 쳐도 소리가 된다…”
웃다리농악 송순갑의 마지막 애제자
“소리 덜어내다 보면 되레 꽉참을 느껴”
(우리의 음악인 소리는 양<量>의 소리가 아닌 질<質>의 소리인가? 즉, 서구처럼 소음 중 가락<리듬>이 있는 소음을 음악이라는 정의에는 맞지만, 음악을 이루는 구성과 내용 면에선 소리 사이를 시간의 연속으로 잇는 서구 음악이 아니고, 동양음악이 표현하는 공간 배치를 여유롭게ㅡ오밀조밀도 좋지만, 여백이 있어 숨쉬는 가락을 표현해 냄ㅡ표현해 군더더기 없는 화음을 구성한다는 의미?)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구라는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싶고 장구 소리에 제 철학을 심고 싶습니다. 같은 가락을 쳐도 소리에 뭘 담을 거냐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생각하는 방식과 깊이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나요. 한창 배울 때는 화려한 것이 좋아요. 그래서 박을 있는 대로 꽉꽉 채워서 칩니다. 그런데 어느 단계를 지나면서부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덜어내기 시작해요. 굳이 또박또박 다 치지 않아도 내 마음속엔 이미 소리가 가득해요. 그러면서 아, 이런 게 나이 먹어 간다는 거구나, 어른이 되어 가는 거구나 하는 걸 느낍니다.”
뭐든 한 가지를 깊이 파고들면 철학을 하게 된다더니 이 사람도 젊은 나이에 뭘 보긴 본 것일까?
- 장구를 공부하니 우리 소리의 기원에 대해 알게 됐습니까?
“장구는 세요고(細腰鼓)라는 이름으로 음악사에 등장합니다. 가는 허리의 북이란 뜻인데 이게 요고로 줄여 불리다가 우리나라에서만 장고 또는 장구란 이름으로 바뀌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긴 장(長) 자로 알고 있지만 쥐다, 집다는 뜻의 몽둥이 장(杖) 자를 써서 장고(杖鼓)이고 발음하기 편하게 장구가 되었죠. 고려 때 중국에서 전래된 것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연주된 악기입니다. 중국 등에서는 가슴에 안고 손으로 치거나 바닥에 놓고 두드리거나 하는데 유독 우리만 채로 두드리는 주법이 발달했습니다. 손으로 두드리는 요고가 양손에 채를 들고 치면서 우리 민족만의 리듬과 장단이 생겨난 겁니다.”
- 우리 조상들은 왜 손으로 치는 악기를 굳이 채를 만들어 치는 악기로 바꾸었을까요?
“삼면이 바다이고 산이 많은 지리적 특성과 잦은 전쟁, 굿과 같은 민속신앙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평원에서는 손으로 두드리는 작은 소리도 멀리까지 가지만 바다가 있고 산이 많은 한반도에서는 손으로 쳐서는 소리가 멀리 퍼지는 데 한계가 있었을 겁니다. 채를 사용하면서 소리가 한결 빠르고 커졌고, 다양한 장단과 리듬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 거지요.”
-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를 처음 복원하기도 했지요?
“장구를 치다 보니 요고가 장구로 변한 까닭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묻고 다녀도 시원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어요. 문헌이란 문헌 다 뒤져 가며 혼자 공부하다시피 해서 석사논문을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에 대해 쓰고 직접 재현도 했습니다. 매년 연주회도 합니다.”
우리소리 토대로 서양과 접목은 찬성
새 장단 만드는 ‘창조적 계승’ 필요해
“중요한 건 전통의 골격 바뀌어선 안돼”
- 우리 국악은 전통을 잘 이어가고 있는 건가요?
“할아버지가 하던 걸 그대로 답습하는 것만 전통이 아닙니다. 음악은 살아있는 생물입니다. 꿈틀거리며 앞으로 가는 거예요. 그런데 누군가 조금 다르게 치면 이상하게 봐요. 예를 듭시다. 신시사이저가 서양악기입니까? 그냥 전자악기입니다. 기타 소리 넣으면 기타 소리 나고 가야금 소리 넣으면 가야금 소리 나는 현대 악기입니다. 그걸 서양식 음보를 이용해 연주하면 서양음악이 되지만 우리 장단을 쓰면 우리 음악이 됩니다. 전통이 단절된 궁중음악이나 동해별신굿같이 사라져가는 민속음악은 전통음악으로서 원형을 보존하는 것이 옳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 속의, 생활 속의 음악은 원형을 지키는 것만이 전통이 아닙니다. 농사짓는 방법이 바뀌고 농사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 농악도 따라 바뀌는 것이 전통의 창조적 계승인 거지요.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창조를 못합니다.”
- 국악의 변화 가운데 가장 바람직한 방향을 설정해 본다면?
“조금 더 고민해봐야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전통의 골격은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 전통을 기초로 한 바탕 위에서 변화를 추구해야죠. 양방언의 음악은 서양음악을 가지고 우리 음악을 연주하는 건데, 그건 서양음악이지 우리 음악은 아닙니다. 음을 산출하는 방식과 패턴이 서구식이면 우리 것이 아니죠. 스파게티를 뚝배기에 담으면 우리 국수가 되는 겁니까? 잡탕은 막아야 해요. 혼란스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시대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제대로 된 전통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서양음악과의 접목을 무조건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찬성하는 쪽입니다. 지금은 융합의 시대이니까요. 다만 자기 음악은 자기가 가장 잘 아는 만큼, 본질이 국악이 아닐 때는 ‘아니다’라고 먼저 밝히고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융합과 창조가 가능합니다.”
- 요즘 신세대 국악인들을 보면 어떻습니까?
“전통음악을 가지고 아카펠라를 만들기도 하고,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전혀 다른 장단의 음악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런 친구들은 정말 대단하고 참신합니다. 아, 이런 게 우리 음악이 가야 할 방향이다 싶을 때도 있어요. 우리 전통을 정확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부를 수 있고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우리 음악의 미래를 밝게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불만스러운 부분은?
“너무 화려함만 좇는 얘들이죠. 저는 (우리 음악이) 천박해졌다는 소리가 가장 듣기 싫어요. 내면의 저 밑에서부터 끄집어냈을 때 아름다운 건데, 덕지덕지 화장하고 치장한 것은 음악이 아니라 연예오락일 뿐입니다. 그런 친구들은 안타깝지만 생명력이 짧아요. 부패하기도 쉽고. 백번 양보해 본인들이 하고 싶다면 말릴 수야 없죠. 예술은 자유니까. 그러나 부디 그걸 우리 음악이라고 말하지는 맙시다.”
- 국악 전공해 보니 어떻습니까? 진로가 넓은 편이 아니지요? 그러다 보니 이런저런 음악인이 생겨나는 게 아닌지요?
“학생들에게 컴퓨터와 영어공부 하라고 엄청 강조합니다. 이 좁은 땅에서는 국악 하는 일마저 포화상태입니다.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점점 없어요. 그래서 밖으로 눈을 돌리라고 합니다. 국악 하는 사람이 무슨 영어냐고 하겠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합니다. 한국 음악 공부하고 싶어도 선생이 없어서 못하는 나라 많습니다. 나가서 유학하고 거기서 한국 음악 가르쳐라, 그게 우리 음악의 세계화다. 니가 거기서 한국 음악 하면 거기가 한국이고 우리 음악 아니냐, 그럽니다.”
- ‘천년을 두드리다’라는 정기연주회를 매년 하고 있는데요.
“‘천년을 두드리다’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는 천년 전 악기로 오늘날의 곡을 연주해 우리 소리의 뿌리를 찾아보자는 뜻입니다. 가죽 매는 방식이나 채 크기를 바꿔 본다든지 여러가지 변화를 시도해 봅니다. 현재 연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옛 소리와 연주법을 찾아보려는 노력이지요. 끝까지 해볼 겁니다. 저는 믿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서 우리 소리를 보면 지금 소리의 뿌리를 알 수 있을 거고, 뿌리를 알면 미래는 어떻게 변화할지 짐작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우리 소리의 진화 과정과 미래를 꼭 알고 싶습니다. 그렇게 해서 얻어지는 지식이나 경험은 죄다 모든 국악인들과 서슴없이 나누려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그는 그저 대전 바닥을 지키겠노라고 했다. 대전의 국악계에 “일대 바람을 몰고 왔다”고 자부하는 그는 대전 국악계의 방향을 제시하고 싶다고 했다. 변화의 중심축이 되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던지듯이, 씹듯이 한마디 덧붙였다. ‘일부 선배들은 니가 뭔데 나서느냐고 나무라지만, 난 자신있습니다. 아닌 건 아닌 거고 긴 건 긴 겁니다.’
“제가 백두대간에도 도전했는데, 산을 탈 때 무슨 생각을 하겠습니까? 저는 음악가입니다. 산을 타면서도 음악을 생각합니다. 저 산 저 풍경을 장단으로 치면 어떤 소리가 될까? 제가 음악을 하면서 산에도 미치고, 활에도 미치고, 검도에도 미쳐 보는 것은 음악 밖으로 나와서 음악을 보고 싶어서입니다. 산을 보려면 산에서 나와야 하듯이 음악을 보기 위해 음악 밖으로 나가 봅니다. 저는 꼭 진정한 음악 속으로 들어가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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