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국환 2010. 8. 2. 15:59

  歲月이 흘러 戊子年 한해도 훌적 가버리고 己丑年 새해가 또 오는구나.

  그동안 잘 있었겠지?  제수씨도 무탈하고.

  己丑年은 12간지로 따지면 소해가 되는데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모두들 새해 첫 아침을 동해 바닷가에 나가 日出을 보며

소처럼 성실하게 일하면서 좋은 날이 오게 해 달라고 소망하고 있단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새해에도 역시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 놓고 있어 기분이 좀 우울하구나.

나야 그래도 풍족하지는 않지만 捐金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니까 바람은 별로 타지 않지만 ,

그래도 주위가 모두 얼어붙으면 나의 체온도 내려가기 마련 아니겠어?

  그동안 몇 번의 通話로 서로의 近況은 대강 알고 있지만.

 國際電話라는 제약 때문에 오래동안 전화통을 붙잡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이렇게 편지를 쓰기로 했다.

  이곳 소식이야 뭐 별난 것은 없고,

열 분의 淑父님 중에 유일하게 俱存해 계시는 안기아제는

금년 87세로 보조기의 도움을 받아 동네 산책 정도는 가능하여

 餘生을 자식들의 보살핌 속에 보내고 계시고,

叔母님은 얼마 전 서울 아지매의 作故로 유동아지매와 안기아지매가 생존해 계시지만,

안기 아지매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고 유동아지매는 왕성한 일과를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있지.

 영천고모는 아들 둘 모두 먼저 보내고 지내다가

풍을 맞아 半身不遂의 몸이 되어 석 달 동안 영천에 있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장대의 入養子인 재성이의 직장을 따라 지금은 춘천 노인 療養病院에서 살아가고 있지.

  춘천으로 옮기기 전 영천병원에 계실 때에는 나와 네 형수가 자주 드나들며 보살폈지.

  대구나 안동이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집집마다 70-80세 노인들이 방안에 우굴우굴하단다.

 壽命이 延長되고 영양상태가 좋아서 그런지

이제는 60이 넘어서는 노인 명함도 못 내밀고(뭐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

 70은 되어야 겨우 노인 축에 끼이는게 현실이다.

우리 어린 시절에는 겨우 40살 장년쯤 되는 연배들이

사랑방 한 칸을 차지하여 화로를 주려 끼고 앉아

長竹(곰방대)을 입에 물고

기침소리 크게 내며 뻐끔뻐끔 담배를 피우다가

재떨이를 두드려대던 장면들이 기억나지 않니?

우리 남매 중 막내둥이인 선혜가 벌써 還甲을 바라보는 연배가 되었으니

우리 나이도 만만찮은데

도무지 70이라는 나이가 실감나지 않는구나.

형님(이제는 순천형님이 아니라 광양이라고 해야겠지, 효경이, 은주, 은경이는 광양에 살고 있는데

 형님은 효경이와 같이 살고 있다. 효선이는 안동에 살고 있으며 안동고등학교에 근무하고 있다.)도

금년에 78세로 들어서지 싶은데 혼자 효경이 집에 얹혀서 살고 있다.

再婚한 형수와는 헤어졌다고 하는데 그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

형님은 일년에 한번 相面하고 있다.

음력8월 秋夕이 되면 남흥 納骨堂에서 우리 門中 친인척들이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그 때 한번 만나게 되지. 형님뿐 아니라 효경이 효선이도 그때 보는거야.

일년 내내 삼촌이라고 문안인사 한번 오길 하나 전화 한통 하길 하나

그러다가 거기에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안녕하셨어요? 하고 불쑥 나타나니

 난들 무슨 할말이 있겠나.

그냥 고개만 끄덕하고 끝이야. 형님도 많이 늙었더라.

하긴 다른 사람 이야기 할 필요도 없지,

나도 얼굴에 주름살로 덮였고 안기 아제는 날 볼 때마다

아버지 쏙 빼닮았다고 하고

미자 동생 미숙이는 내가 꼭 저아부지(유동아제) 닮았다고 감탄을 하더구먼.

 

  나는 지난해 11월달에 지중해 인근을 여행하고 돌아왔다.

터키, 그리스, 이집트 3개국을 12일 동안 여행했는데

이집트와 그리스에서는 찬란한 古代文明의 眞髓를,

터키에서는 廣闊한 자연이 만들어 낸 카타코피아와 소금 호수

그리고 유라시아를 정복했던 오스만 트르크 족들의 용맹스러운 자취를 찾아볼 수 있었지.

그러나 찬란한 문명을 자랑하던 그리스의 후손들은

국민소득 1500달러의 最貧國으로 전락하여

외국에서 온 觀光客들에게 손을 벌리며 원 달라! 원 달라! 를 외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歷史의 循環이지.

  보낸 돈 200달러 잘 받았다.

꼬박꼬박 해마다 잊지않고 보내는 네 정성이 고맙다. 뜻있게 쓸께.

  서울 아지매는 10여년을 鬪病하다가 돌아가셨지만

그래도 긍환이 근무하는 우리나라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삼성병원 장례예식장에서 생을 마감했으니

복이라면 복이겠지.

시신은 火葬하고 그 遺骨을 남흥 남골당에 모셨단다.

 

  오늘은 이만 하자.

  효욱이 소식은 종종 듣나? 잘 하겠지.

  잘 있어. 두루두루 안부 전하고---

   2008. 12. 30               국환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