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렙 - 음악

[주제와 변주]서늘한 그늘의 아름다움

안국환 2009. 8. 9. 15:27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

 
프랑스에 에라토(Erato)라는 음반 레이블이 있다. 포르투갈 출신의 피아니스트 마리아 주앙 피레스(사진)를 처음 본 것은 이 레이블의 LP를 통해서였다.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번부터 3번까지를 수록한 음반, 1974년 녹음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5년 전이다. 막 30대에 접어든 ‘젊은 피레스’가 피아노 앞에 앉아서 왼손으로 머리를 받친 채 악보를 들여다보고 있다. 그것은 ‘음악가’로서 아름다운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도 매혹적이다. 커다란 두 눈은 촉촉하게 젖었고, 그 눈매는 뭔가 사연을 간직한 듯 서늘하다.

처음에는 그래서 피레스의 연주를 들었다. 아마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예쁘고 지적인 외모, 게다가 정갈하면서도 슬퍼보이는 모습에 반해서 피레스의 음반에 자꾸 손이 가던 남자들이 한둘이었겠는가. 70년대의 피레스는 앞서 말한 ‘에라토’에서 모차르트의 중·후기 피아노 협주곡들을 녹음했고, 슈베르트와 쇼팽의 음악을 녹음했다. 모두 LP 시절의 녹음들이다. CD로는 구하기 쉽지 않다.

일본 작가 다나자키 준이치로가 쓴 <그늘에 대하여>라는 책이 있다. 국내에서도 2005년 고운기 시인의 번역으로 출판됐다. 작가 준이치로는 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추천된 이래, 심장마비로 사망한 65년까지 해마다 후보로 거론됐던 일본 문학의 거봉. 그는 사회에서 동떨어진 개인을 그려내는 데 몰두했고, 퇴폐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낭만적 경향을 보인 작가였다. 그는 이 책에서 ‘그늘인 듯한데 그늘도 아니고, 그림자인 듯한데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것’을 ‘음예’라고 이름짓는다. ‘안채에서 떨어져 신록의 냄새나 이끼 냄새가 나는 정원의 나무와 수풀 뒤에 마련돼 있’는 것. 준이치로는 그 음예야말로 일본풍(日本風)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말하면서, 재래식 화장실과 다다미방, 그림을 걸거나 꽃꽂이를 하려고 벽 한쪽에 만들어두는 도코노마(床の間), 연극 가부키와 인형극 노, 심지어는 옛 여인의 화장법까지 들여다보면서 음예의 미학을 탐구한다. 그래서 책의 원제가 <음예예찬>이다. 한국어로 번역·출판되면서 ‘음예’가 ‘그늘’로 바뀌었다.

피레스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그 ‘음예’가 떠오른다. 아르헨티나 태생의 마르타 아르헤리치가 뜨거운 태양처럼 화려하게 타올랐다면, 세 살 아래의 피레스는 서늘한 그늘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연주자였다. 그는 ‘건반을 질주하는’ 아르헤리치에 비교하자면 ‘달빛’에 가까웠다. 아르헤리치가 스케일 크고 호방한 연주를 보여줬던 반면에, 선천적으로 몸집과 손이 작은 피레스는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며 충성도 높은 ‘일부’ 애호가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물론 어떤 이들은 피레스의 템포 설정에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 강약의 대비가 자의적이라고 비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피레스가 89~90년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내놨던 모차르트 소나타의 가치를 부인하긴 어렵다. 피레스는 앞서 언급한 프랑스 ‘에라토’에서도 같은 곡을 녹음했던 적이 있지만, 40대 중반의 나이에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녹음한 음반이 한층 더 호평받는다.

쇼팽은 그의 또 다른 장기였다. 하지만 그는 4년 전 슈베르트의 곡들을 녹음한 이후 심장병과 싸우며 한동안 레코딩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근 국내에 라이선스로 나온 그의 음반이 반갑다.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피레스가 다시 연주하는 쇼팽. ‘피아노 소나타 3번’을 중심으로 왈츠와 마주르카, 첼리스트 파벨 곰지아코프와 협연한 ‘첼로 소나타’ 등을 담았다. 쇼팽이 1844년부터 1849년 사이에 작곡한 곡들, 말하자면 말년작들이다. 심장병과의 싸움에서 마침내 벗어난 피레스는 쇼팽의 말년작에서 어떤 그늘을 본 것일까. 그는 이 녹음에 대해 “쇼팽의 마지막 시기를 산책하는 마음으로 연주했다”고 말했다. 어느덧 65세가 된 피레스의 얼굴에 적잖게 잡힌 주름살, 하지만 경이롭게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청초하다.

<문학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