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렙 - 음악
[주제와 변주]“요즘 지휘자들은 개성이 없어”
안국환
2009. 8. 4. 20:50
<이 한장의 명반>의 저자이자 전 청주대 영문과 교수인 안동림씨(77·사진)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어떤 이들은 ‘음악평론가’라고 부르지만 그는 한사코 손사래를 친다. “내가 무슨 평론가야? 그냥 음악을 좋아하는 ‘잡놈’이지”라며 고개를 내젓는다. 영 틀린 말은 아니다. 그는 ‘음악평론가’라는 공식적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지난 수십년간 음악에 대한 글을 써왔지만 그것이 평론적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를 ‘음악 칼럼니스트’라고 부르는 것도 난감하다. 우리나라에 언제부터 이리도 음악 칼럼니스트들이 많아졌을까. 아마도 2000년대 접어들면서부터인 것 같다. 각종 공연장 및 문화재단에서 간행하는 잡지에 수많은 음악 칼럼니스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 ‘양적’ 민주화는 한국의 공연 문화가 한 번쯤 거쳐야 할 통과의례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많은 칼럼니스트들 중에는 꽤 읽을 만한 글을 쓰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 얘기가 그 얘기인 경우가 흔하다. 게다가 남의 글을 ‘슬쩍’ 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말의 앞뒤를 바꿔놓은 채 시침을 뚝 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예 ‘복사’와 ‘붙여넣기’로 자신의 글을 완성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 필자도 몇번인가 복사를 당했다. 최근에도 어떤 평론가와 교수께서 ‘실례’를 하셨다. 어쨌든 이렇게 정신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70년대부터 글을 써온 원로를 ‘음악 칼럼니스트’라고 칭하는 것도 왠지 께름칙하다.

그렇게 호칭 문제로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안동림씨가 며칠 전에 한 권의 책을 냈다. 20세기 명지휘자 34명의 음악적 생애와 특징을 비롯해 그들이 남긴 명연주까지 소개하고 있는 <불멸의 지휘자>라는 책이다. 월간 ‘객석’에 3년 동안 써온 원고를 500쪽 가까운 분량의 단행본으로 묶었다. 그는 “내 글엔 깊이가 별로 없다”며 특유의 어린애 같은 웃음을 터뜨리곤 하지만,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 이만한 생산력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이미 쉽지 않은 일. 그야말로 ‘노익장’이라고 부를 만한 의욕과 기력이다.
지난달 30일 <불멸의 지휘자>를 펴낸 출판사가 출간기념 간담회를 마련했다. 대학로의 한 카페였다. 기자들이 7, 8명쯤 참석했고, 이날 안씨는 기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매우 드문 경우다. ‘까칠한’ 기자들이 어떤 개인의 출판기념회에서 박수를 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그는 기분이 아주 좋아 보였다. 마침 그 자리에는 80년대 ‘음악동아’ 편집장이었던 이순열씨(74)도 함께 했다.
“요즘 지휘자들은 개성이 없어. 음악이 다 비슷비슷해.” 스스로를 “그냥 음악 애호가”로 고집하는 그는 <불멸의 지휘자>를 써낸 이유를 그렇게 말했다. 토스카니니부터 주세페 시노폴리까지, 이미 세상을 떠난 34명의 거장들을 다시 불러내는 까닭이 “요즘 음악들은 평준화돼서, 도통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점심 식사 후 다른 카페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같은 주제의 얘기를 이어갔다.
“예술의 본령은 개성인데, 문명 자체가 ‘기계주의’로 자꾸 흘러가면서 음악도 개성을 잃었어. 지휘자들의 광휘도 사라졌어. 이제는 지휘라는 ‘기능’만 남았어.”
그는 그렇게 과거의 명장들을 그리워했다. “브루노 발터와 푸르트뱅글러, 크나퍼츠부슈”를 특별히 좋아하는 지휘자로 꼽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정작 그리워하는 게 꼭 옛날 지휘자들일 뿐일까.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니, 그의 속마음에 자리한 것은 사람 냄새가 살아 있던 ‘그 시절’에 대한 향수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가 말했다. “문 기자, 여기 이 선생이 경기도 퇴촌에서 농사를 짓잖아? 올해는 참외를 심었대요. 7월 말에 수확한대. 직접 만든 퇴비를 주기 때문에 참외가 아주 실할 거라구. 어때 이 선생? 우리가 놀러가면 참외 좀 나눠줄 거요?” 그러자 이순열씨가 반색을 했다. “얼마든지 오시구려. 어디 참외뿐인가, 문 기자가 온다면 옛날 LP도 좀 나눠드리지.”
<문학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