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렙 - 음악
[주제와 변주]가혹한 질병·육신의 고통이 찬란한 모차르트를 남기다
안국환
2009. 8. 4. 20:46
ㆍ피아니스트 클라라 하스킬
얼마나 아팠을까. 클라라 하스킬이 연주하는 모차르트 협주곡을 들을 때마다, 그녀가 겪었을 육신의 고통이 함께 떠오른다.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찾아왔던 세포경화증. 아리땁던 그녀는 결국 곱사등이가 되고 말았다. 척추는 뒤틀리고 어깨뼈는 주저앉았다. 하스킬은 세상을 떠나던 65세까지, 그렇게 비틀린 몸으로 피아노를 쳤다. 건반을 누를 때마다 적잖은 통증이 찾아왔을 게다. 실제로 하스킬은 가까운 이들에게 연주의 고통을 종종 토로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1956년 브장송 페스티벌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연주하기 직전, “리사이틀과 협주곡은 무서워”라는 메모를 남겼다. 또 파울 자허의 지휘로 스튜디오에서 모차르트 협주곡을 녹음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그녀는 “무섭고 끔찍해!”라는 메모를 남겼다.

하스킬이 모차르트에 특별히 집중했던 것도 신체적 장애 탓이 컸을 터. 어린 시절의 그녀는 브람스, 리스트, 쇼팽, 무소르그스키, 라흐마니노프 등을 연주했으며 현대작품으론 바르토크, 힌데미트까지 섭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7년간의 칩거 끝에 불구의 몸으로 다시 돌아온 하스킬에게 ‘방대한 레퍼토리’는 무리였다. 그녀는 말없이 운명을 받아들인 채 모차르트에 집중했다. 물론 슈만의 곡을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아르투르 그뤼미오와 함께 연주한 베토벤의 소나타 등 명연도 두루 선보였지만, 오늘날 하스킬의 ‘유산’을 대표하는 것은 역시 모차르트 음반들이다. 특히 필청음반으로 꼽히는 것은 세상을 떠난 60년 녹음했던 ‘피아노 협주곡’ 20번과 24번(필립스).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지휘하는 콩세르 라무뢰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다. 두 곡을 굳이 비교하자면, 20번보다 24번이 더 뛰어나다는 평가가 많다.
만약 오래 전부터 하스킬을 사랑해온 애호가라면 최근 프랑스 ‘이나(INA)’에서 내놓은 미발표 음원들을 놓쳐선 안될 성싶다. 프랑스의 국영 라디오방송국 산하 레이블인 ‘이나’는 자료실의 먼지 더미 속에서 때때로 귀한 음원들을 건져올린다. 지금까지 내놓은 음반 수가 극히 적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LP나 CD를 복각한 음반이 아닌 애초의 녹음이어서 그 가치가 신선하다.
이번에 나온 ‘Mozart, 4 Concertos’는 두 장의 CD로 이뤄졌다. 마르케비치가 프랑스 국영 라디오방송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9번과 앙드레 클뤼탕스가 같은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협연한 24번을 수록했다. 모두 55년 실황이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하스킬이 두려움을 토로했던 56년 브장송 페스티벌 실황도 담겼다. 협주곡 19번이다. 이 실황은 프랑스의 마이너 음반사인 ‘프낙’에서 LP로 출시된 적도 있으니, 정확히 말해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녹음은 아니다. 음질도 스튜디오 레코딩에 비해 건조하고 거칠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매끄러운 음질을 위해 연주의 디테일을 깎아먹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불구의 하스킬은 2차대전을 겪으며 또 한번의 고비를 맞는다. 루마니아 태생의 유대인이었던 하스킬은 나치를 피해 남프랑스로, 스위스로 떠돌아야 했다. 당시 그녀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며 공포에 사로잡혀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그 와중에 늘 두통에 시달렸고 두 눈도 점차 안 보이기 시작했다. 시신경에 생긴 종양 탓이었다. 하스킬은 종전 후에야 한 시골 의사에게 종양 제거 수술을 받고 두통과 실명에서 겨우 벗어날 수 있었으며, 얼마 후 액상 프로방스 페스티벌에 참가해 모차르트의 협주곡 20번을 연주했다. 48년 7월25일. 그 실황이 바로 이번 음반 마지막 곡으로 담겨 있다.
60년은 하스킬의 마지막 해였다. 12월1일 파리 샹젤리제 극장에서 있었던 바이올리니스트 그뤼미오와 협연은 대성황이었다. 객석은 매진됐고 보조의자까지 들여놓아야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다음 일정은 일주일 후 벨기에 브뤼셀. 하지만 그것은 성사되지 못했다. 같은달 6일 브뤼셀 역에 도착한 하스킬은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혼수를 헤매다 다음날 아침에 눈을 감고 말았다. 의식불명에서 잠시 깨어난 그녀는 곁에 있던 동생에게 “아무래도 내일 연주는 어려울 것 같구나. 그뤼미오씨에게 미안하다고 전해다오”라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프고 고단했던 65년. 하지만 그녀의 모차르트는 여전히 찬란하다.
<문학수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