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 진천 농다리
▲ 비오는 가을날. 진천에서 보냅니다 / 박종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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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게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위를 걷고 있습니다. 반가운 가을비 맞으며 돌다리를 건넙니다. 때는 세상이 광속으로 바뀌고 있는 21세기인데, 이 다리는 만든 지 1000년이 넘었습니다. 나는 1000년 먹은 다리를 건너 빗속으로 들어갑니다. 이 가을, 충북 진천에서 편지를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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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 농다리나는 지금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에 서 있습니다. 마을 앞에 세금천이라는 개울이 흐르는데, 다리는 그 위를 가로지릅니다. 이름은 농다리라고 합니다. 신라 장군 김서현이 고구려의 낭비성을 빼앗은 기념으로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다리이지요. 김서현은 김유신의 아버지입니다. 학술적으로는 고려 말에 만들었다는 보고서도 있긴 하지만, 신라의 나날에 다리를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첨단 공법으로 만든 다리가 무너져 내리는 판에, 이 땅의 민초들이 손으로 만든 다리가 천 년 세월을 인내하여 사람들을 맞습니다.
원래 길이는 100m였습니다. 하지만 긴 세월 수백 번은 치렀을 장마 홍역에 양쪽이 떠내려가 지금은 93m 정도만 남아 있습니다. 3m 정도 폭을 유지하면서 암숫돌 한쌍씩 24칸을 엇갈리게 끼워맞췄습니다. 원래는 28칸입니다. 하늘의 별자리인 28숙(宿)을 상징한 숫자입니다.
그 생김이 위에서 보면 영락 없이 지네입니다. 지네 아시지요. 구불구불 몸을 비틀며 기어가는 그 벌레. 사람들이 발을 딛는 상판석은 굉장한 정성으로 수집한 돌을 썼습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워온 돌이지만, 그 무늬와 빛깔은 예술입니다. 그 정성에 다리가 보답을 합니다. 나라에 변고가 있으면 어김없이 이 지네가 울어댄답니다. 그래서 굴티마을 사람들은 며칠씩 잠을 자지 못하고 밤을 샌다고 하지요.
다리는 그 지네처럼 몸을 비틀어 물의 흐름에 몸을 맡깁니다. 유속이 센 곳은 상류쪽으로 몸을 틀었고, 약한 쪽은 하류를 향해 몸을 틀었습니다. 그 흐름에 따라 돌들은 조금씩 흔들리며 울어댑니다. 접착제도, 석회도, 시멘트도 콘크리트도 쓰지 않은, 오로지 돌들을 끼워 맞춘 다리입니다. 장마가 지면, 장마에 맞서지 않고 물을 위로 흐르게 놔뒀습니다. 이를 수월교(水越橋)라고 합니다. 그래요, 흔들리기에 부서지지 않고 무너져 내리지 않습니다. 눈앞의 견고함을 포기했기에 다리는 천 년을 멸실로부터 해방된 것이지요. 다리를 건너니 예쁜 꽃밭이 나를 반깁니다. 꽃밭을 지나 정자에 서서 다리를 바라봅니다. 천 년이 지난 지금도 다리는 열심히 사람들을 실어 나릅니다.